EP2 합동훈련 - 개성에 관하여

(^⚈ ﻌ ⚈) 2025. 12. 28. 01:24

니코의 개성은 *과거*로만 타임루프이며, 리미트는 돌린 시간만큼 잠을 자야 한다는 설정입니다. 

한 달을 돌렸으면 한 달 내내 자야 하는데, 밥 안 챙겨주면 아사한다는 설정입니다...

시점상 바쿠고는 니코의 개성은 모르고, 애초에 비밀로 해서 주변에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개성은 고양이에요" 이러고 다녀서 그냥 유연성이랑 착지, 운동능력강화정도의 개성으로 모두 인식하고 있습니다.

 

 

 

#1 

같은 날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같은 순간이었다.

바쿠고 카츠키는 오늘도 훈련장에 있었다. 겨울 공기가 바닥에 깔려서, 콘크리트가 유난히 차갑게 보이던 날. 바쿠고는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는 척했지만, 니코는 이미 알고 있었다. 겨울엔 그의 개성이 까다로워진다는 걸. 땀이 잘 나지 않으면 폭발은 불안정해지고, 그 미세한 차이가 사고로 이어진다는 것도.

첫 번째는 정말 사소했다.

발판을 밟는 각도.
평소보다 2도쯤 비틀린 착지.

그 결과는 오른쪽 손목의 미세한 충격이었다. 크게 다치진 않았다. 본인은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넘길 종류의 통증. 하지만 니코는 그 순간을 너무 또렷하게 목격해 버렸다. 

— *아.*

니코는 본능적으로 시간을 되돌렸다.

몇 초. 정말 몇 초뿐이었다.

세상이 딱, 한 프레임 전으로 돌아간다. 소리도, 공기도, 사람들의 표정도 그대로. 오직 그녀만이 그 차이를 알고 있었다.

다시 같은 점프.
같은 각도.

이번엔 니코가 손을 뻗었다.

“선배.”

바쿠고가 짜증 섞인 얼굴로 돌아본다.

“뭐야.”

그 짧은 시선 교환 때문에, 그의 착지가 아주 조금 늦어졌다. 각도가 바뀌었다. 손목에 가던 충격이 분산됐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훈련은 계속됐다.

바쿠고는 모른다.
이 순간이 두 번째라는 걸.

---

두 번째는 조금 더 심했다.

폭발 타이밍.
공기 중 습도.

바쿠고는 본능적으로 밀어붙이는 타입이다. 생각보다 몸이 먼저 나간다. 그게 강점이자 약점이라는 걸, 니코는 몇 번의 ‘되돌림’ 끝에 알게 되었다.

이번엔 발목이었다.

소리가 났다. 아주 작게, 그러나 분명히. 니코는 얼굴이 굳어지는 걸 느꼈다.

— *한번만 더.*

다시 되돌렸다.

이번엔 니코가 더 가까이 붙어 있었다.

바쿠고는 눈썹을 찌푸렸다.

“야. 왜 이렇게 따라다녀.”

니코는 대답하지 않았다.

말을 고르는 데 시간을 쓰고 싶지 않았다. 말보다 먼저 해야 할 게 있었으니까.

바쿠고는 그 침묵을 불쾌해했다.

“말 안 할 거면 떨어져. 훈련 방해하지 말고.”

그 말이 날카롭게 꽂혔지만, 니코는 고개만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아주 조금 타이밍을 바꿨다. 바쿠고가 폭발을 일으키기 직전에, 바닥에 생긴 미세한 물기를 손으로 문질러 없앴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이번에도, 아무 일도 없었다.

바쿠고는 모르고,
니코만 알고 있었다.

이날만 벌써 *네 번째*라는 걸.

---

점점 피곤해졌다.

시간을 되돌리는 건 단순한 스위치가 아니다. 니코는 항상 그 ‘이전의 선택’을 기억한 채로 현재를 다시 살아야 했다. 이미 본 실패를 다시 통과하면서, 조금씩 다른 답을 찾는 일.

사람들은 그녀를 침착하다고 말한다. 덤덤하고, 상황판단이 빠른 편이라고.

사실은 그냥, 너무 많은 경우의 수를 본 탓이지만.

*이렇게 하면 다친다.*
*저렇게 하면 더 크게 다친다.*
*아무것도 안 하면…*

그 끝엔 항상 같은 결론이 있었다.

— *한 번만 더.*

니코는 오늘 하루 동안, 이미 일곱 번을 되돌렸다.

전부 바쿠고 때문이었다.

---

“진짜 왜 이러는데.”

여덟 번째 시도에서, 바쿠고가 결국 폭발했다.

니코가 또 너무 가까이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그림자처럼.

“아까부터 계속— 신경 쓰이게.”

그의 목소리는 거칠었고, 짜증이 그대로 묻어 있었다. 평소와 다르지 않은 반응이었지만, 니코는 그 안의 예민함을 느꼈다. 

“너 아직 1학년이지. 네 훈련이나 신경 써...,”

 

낮게 읇조리는 목소리가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니코는 잠시 그를 올려다봤다.

말하고 싶은 건 많았다.
하지만 말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래서 고개를 숙였다.

“… 알겠어요.”

그 한마디로 끝내려 했다.

그리고 그 순간, 니코는 이번엔 돌리지 말아볼까라는 생각을 했다.

---

아홉 번째.

이번엔, 정말 큰 사고였다.

폭발 반동.
중심 상실.
넘어지는 각도.

니코는 너무 늦게 깨달았다. 몸이 반응하지 않았다. 바쿠고의 몸이 공중에서 균형을 잃고, 동시에 찬 바람이 거세게 불었고..., 바닥으로 떨어지는 게 너무 선명하게 보였다. 바쿠고는 작은 폭발을 일으켜 건물 모퉁이를 잡았지만 살점이 갈리는 소리만 들릴뿐 추락 속도가 줄어들진 않았다.

너덜너덜한 손바닥과 함께 바쿠고가 추락했다.
뼈가 부딪히는 소리에 주변이 조용해졌다.

바쿠고는 이를 악물고 일어났다. 팔꿈치에서는 피가 나고 있었고 표정이 일그러진 채였다.

“젠장…”

니코는 그 자리에 굳어 있었다.

— *이번엔 안 돌릴거야.*

분명 결심한지 몇 분조차 지나지 않았다.
모든 걸 막을 수는 없고, 바쿠고도 자신의 미래를 내가 제멋대로 바꾸는 걸 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히어로라면, 다칠 수도 있는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려고 했다.

그런데.

바쿠고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니코를 봤다.

분노보다 먼저, 당황이 스쳤다.

“너 왜—”

그 표정을 보는 순간, 니코의 머릿속이 하얘졌다.

아, 안 된다.

이건 선택이 아니었다.
이건 그냥, 도망이었다.

니코는 이를 꽉 물었다.

— *다시.*

---

열 번째.

세상은 다시 몇 초 전으로 돌아왔다.

니코는 이번엔 생각하지 않았다. 판단하지도 않았다. 그냥, 몸이 먼저 움직였다.

“선배.”

바쿠고가 돌아보는 그 찰나, 니코는 그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아주 조금. 거의 의미 없는 힘.

하지만 그 ‘조금’이, 모든 걸 바꿨다.

폭발의 각도가 틀어졌다.
몸이 넘어지지 않았다.

바쿠고는 무사히 착지했다.

그리고 바로 니코를 노려봤다.

“야.”

니코는 숨을 고르고 있었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눈앞이 약간 어두웠다.

“진짜 오늘 왜 이러냐고.”

니코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아주 작게 말했다.

“… 다치는 게 싫어서요.”

바쿠고는 말을 잃었다.

그건 변명도 아니고, 핑계도 아니었다. 너무 단순해서, 화를 낼 수도 없는 말이었다.

니코는 그를 보지 않았다. 고개를 숙인 채, 손을 놓았다.

“전 그냥… 여기 있을게요.”

그날 이후, 바쿠고는 다시는
“왜 따라다니냐”는 말을 하지 않았다.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가 같은 시간을 몇 번이고 버려가며
자기를 지켜보고 있었다는 걸—

아직은, 모르지만.

 

 

 



#2 바쿠고 시점 — 오늘따라, 이상하게

바쿠고 카츠키는 그날 훈련이 잘 안 된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몸 상태가 나쁜 건 아니었다.
컨디션도 평소랑 다르지 않았다.
그저— 짜증이 났다.

이유는 명확했다.

“야.”

시야 한쪽에 계속 걸리는 존재.

“너 오늘 왜 이렇게 붙어 다녀.”

니코였다. 1학년. 조용하고, 눈에 잘 안 띄고, 필요 이상으로 말도 안 하는 애. 보통이라면 훈련장에 있어도 존재감이 흐릿한 타입인데, 오늘은 달랐다.

너무 가까웠다.

자기 반경 안에, 계속.

“말 안 할 거야?”

대답이 없다.

바쿠고는 혀를 찼다.

"뭐 하는 애야, 진짜..."

누가 보면 감시라도 하는 줄 알겠다. 움직일 때마다 시선이 따라온다. 폭발 각을 잡으면, 그 각을 읽는 것처럼 한 박자 늦게 다가온다.

거슬린다.

하지만 더 거슬리는 건 이상하게, 오늘은 부상이 전혀 없다는 점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분명 손목이 먼저 나갔을 착지.
아슬아슬하게 미끄러졌어야 할 반동.

전부, 미묘하게 비켜간다.

“…….”

바쿠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이건 실력이 늘어서가 아니다.
감각이 그렇게 말해주고 있었다.

뭔가가 끼어들고 있다.

그 사실이 마음에 안 들었다.

그래서 더 세게 나갔다.
더 무리했다.
일부러 위험한 루트를 택했다.

그러면 보통, 결과는 하나다.

 


작은 부상이 있을뿐 완전무결한 승리엔 이상이 없다.

 


그런데.

넘어질 각도에서, 몸이 멈췄다.
폭발 반동이 틀어졌다.
발이 닿을 위치가 바뀌었다.

바쿠고는 착지 후 바로 뒤를 돌아봤다.

니코였다.

아무 말도 안 하고 서 있다.
숨이 약간 가빠 보인다.

“야.”

이번엔 목소리가 낮아졌다.

“너, 뭐 했어.”

니코는 그를 보지 않았다.

“… 아무것도요.”

거짓말이라는 걸, 바쿠고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하지만 따질 수가 없었다.
증거가 없었다.

그래서 짜증만 남았다.

“그럼 떨어져. 신경 쓰이니까.”

그때, 니코의 어깨가 아주 작게 움찔했다.

바쿠고는 그걸 보고 더 짜증이 났다.

그런데—

그 다음 순간이었다.

폭발.
반동.
균형 상실.

이번엔 확실히, 왔다 싶었다.

바닥이 빠르게 다가왔다.

— *젠장.*

그 순간, 팔이 잡아당겨졌다.

정말 미세한 힘.
의미 없을 정도로 약한 접촉.

그런데도, 각도가 바뀌었다.

바쿠고는 간신히 넘어지지 않고 착지했다.

심장이 크게 뛰었다.

뒤를 돌아보자, 니코가 있었다.

얼굴이 창백했다.
손이 약간 떨리고 있었다.

“… 다치는 게 싫어서요.”

그 한마디.

그 순간, 바쿠고는 깨달았다.

아.
이 애, 오늘 내내—

 


#3 바쿠고 시점 —  눈치



— 고양이는 목숨이 9개니까요.

니코가 장난처럼 했던 말이었다. 당시엔 무슨 헛소리인가 싶어서 넘겼지만 아무래도 수상했다. 개성에 대해 물어보면 어물쩍 넘기고는 하던 모습,... 이 녀석 뭔가 숨기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날 이후, 바쿠고는 일부러 니코를 관찰했다.

아무래도 그 녀석은 모를 거다. 원채 남 눈치 안 보는 성격이니까.

그래서 바쿠고는 합동훈련 중에 일부러 위험한 선택을 했고, 아슬아슬한 타이밍을 만들었다.

그러면 항상.

니코가 있었다.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그리고, 아주 가끔.

니코의 눈이 멍해질 때가 있었다.

딱 몇 초.
세상과 초점이 어긋나는 느낌.

그럴 때마다, 바쿠고는 이유를 몰라서 기분이 나빠졌다.

—이건 내 영역이다.

자기 몸이, 자기 싸움이,
자기 선택이

누군가에게 조용히 관리당하고 있다는 느낌.

 

어느 날은, 일부러 말을 꺼내봤다. 피부가 조여올 정도로 매서운 바람이 부는 옥상 위였다. 그날도 뒤를 밟히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옥상으로 올라와봤는데 니코는 숨는 눈치도 없이 따라 올라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야. 니코.”

니코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나 믿어라.”

그 말은 거의 명령에 가까웠다.

니코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

“쓸데없는 짓 하지 말라고.”

바쿠고는 눈을 피하지 않았다.

“내가 알아서 할 수 있어.”

그날, 니코는 이상하게 기운이 없었다.


 



#4 니코시점 - 모두가 잠든 동안

기숙사 방은 조용했다.

니코는 침대에 앉아 있었다.
몸이 무거웠다. 눈꺼풀이 자꾸 내려왔다.

오늘, 너무 많이 돌렸다.

몇 초.
몇 초.
몇 초.

전부 사소한 선택이었는데,
쌓이고 쌓여서—

“…….”

니코는 이불을 끌어당겼다.

*이번엔 안 돌렸어야 했을까.*

그 생각이 스쳤다.

하지만 바로, 바쿠고의 얼굴이 떠올랐다.
넘어지던 순간의 표정.

— *아니.*

그건 선택이 아니라, 방기였다.

니코는 숨을 내쉬고 그대로 누웠다.

눈을 감자, 세상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시간의 무게가 몸 위로 눌러왔다.

돌린 만큼,
정확히 그만큼.

의식이 꺼지기 직전,
마지막으로 떠오른 생각은—

— 바쿠고 선배를 좀 더 믿는 게 맞는 선택이었을까...

그리고 니코는 깊은 잠에 빠졌다.

그 시간 동안,
아무도 모르게—

바쿠고 카츠키는,
아무 이유 없이 잠에서 깼다.

가슴이 답답했다.

이유는 몰랐다.

하지만,
왠지—


 




#5 바쿠고 시점  — 니코가 잠든 동안

바쿠고 카츠키는 새벽에 눈을 떴다.

이유는 없었다.
악몽도 아니었고, 소음도 없었다.

눈을 뜨자마자 느껴진 건, 심장이 이상하게 빠르게 뛰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뭐야.”

작게 중얼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기숙사 방은 어둡고 조용했다. 창밖에서 바람이 스치는 소리만 들린다. 시계를 보니 새벽 세 시를 조금 넘긴 시각.

*젠장. 아직 한참 잘 시간인데.*

다시 누우려고 했지만, 이상하게도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가슴 안쪽이 묘하게 답답했다.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내쉬어도 가라앉지 않는다.

바쿠고는 이 감각을 알고 있었다.

이건 공포도, 분노도 아니다.
싸움 전의 긴장도 아니다.

— *불안.*

자기 몸에 무슨 문제가 생긴 것도 아닌데,
이유 없이 불길한 예감이 드는 상태.

바쿠고는 이를 악물었다.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마.”

혼잣말처럼 뱉었지만, 설득력은 없었다.

머릿속에, 원치 않게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다.

니코.

오늘 훈련 후, 말없이 사라진 모습.
어깨가 축 처진 채로, 인사도 없이 돌아서던 뒷모습.

*잠들었겠지.*

그렇게 생각하려고 했다.
그 애는 늘 조용하고, 늘 혼자 정리하는 타입이니까.

그런데—

*왜 이렇게 조용하지.*

그 생각이 들자, 더 잠이 달아났다.

---

바쿠고는 결국 침대에서 내려왔다.

차가운 바닥에 발을 디디자 정신이 조금 들었다. 세면대에서 물을 틀고 얼굴을 씻었다. 물이 흘러내리는 소리를 들으며, 일부러 머리를 비웠다.

괜한 걱정이다.

그 애는 약하지 않다.
오히려, 필요 이상으로 강하다.

 


그런데도—

손으로 얼굴을 닦다 말고, 바쿠고는 멈췄다.

*오늘.*

오늘 하루를 떠올렸다.

훈련 중, 자신이 일부러 무리했던 순간들.
그때마다, 니코가 너무 정확한 타이밍에 끼어들었던 장면들.

그리고—

마지막에 했던 말이.

— "쓸데없는 짓 하지 말라고.”

그때 니코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 흔들림이, 지금 와서야 제대로 떠올랐다.

“… 설마.”

바쿠고는 이를 악물었다.

설마, 
머릿속에 불쾌한 가정이 떠오르는 순간, 바쿠고는 거칠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그 애는 그런 타입이 아니다.
타인의 한마디에 자신의 일정을 무시하고, 이 위험한 상황에서 밖으로 나가 산책을 하기 위해 탈주를 하는 타입은 아니다. 아닐 텐데도..., 불안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

기숙사 복도는 새벽 특유의 정적에 잠겨 있었다.

바쿠고는 무의식적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목적지는 정해져 있지 않았다. 그냥—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문득, 한 방문 앞에서 멈췄다.

니코의 방.

문은 닫혀 있었다. 불빛은 없다.

*…자고 있겠지.*

그런데 손이 움직였다.

노크를 할까 말까, 몇 초간 고민했다.
그 몇 초가 이상하게 길게 느껴졌다.

결국, 노크는 하지 않았다.

대신, 문 앞에 서서 귀를 기울였다.

아무 소리도 안 난다.

숨소리도, 뒤척임도.

너무—

바쿠고의 속이 서늘해졌다.

 

자신의 감각이, 이유 없이 경고음을 울렸다.

손이 문 손잡이에 닿을 뻔했다. 바쿠고는 재빨리 손을 거뒀다.

“…젠장.”

이건 확실히, 자기 영역을 벗어난 행동이다.
괜한 참견이다.

그래서 돌아서려 했다.

그 순간—

문 안쪽에서, 아주 희미한 소리가 들렸다.

천이 스치는 소리.
침대가 아주 조금 움직이는 소리.

바쿠고는 숨을 멈췄다.

그제야, 가슴이 조금 내려앉았다.

“… 자고 있잖아.”

그런데도,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

바쿠고는 그 자리에 한참을 서 있었다.

이상하게, 시간을 확인하는 것도 잊은 채.

문 너머에 있는 사람이
지금 이 순간, 정상적으로 숨 쉬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안도하고 있는 자신을 깨달았다.

그 사실이, 더 짜증 났다.

*언제부터 이렇게 됐지.*

니코는 동료다.
후배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렇게 정의해 왔는데—

왜 이렇게, 이유 없이 신경이 쓰이는지.

왜 그 애가 보이지 않으면 불안해지는지.

바쿠고는 천천히 주먹을 쥐었다.

*이건 위험하다.*

이런 감정은, 싸움에서 독이 된다.
판단을 흐린다.

그런데도—

“…….”

바쿠고는 문을 떠나지 못했다.

결국, 바닥에 주저앉았다. 벽에 등을 기댄 채.
이건 감시도, 보호도 아니다.

이건 그냥—